페니실린이나 가나마이신, 아목시실린 등
일부 항생제의 이름은 우리들의 귀에 퍽이나 익숙하다. 감기에 걸리거나 통증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나름대로
항생제를 구입하여 복용하는 것은 많은 한국인들의 습관이기도 하다. 항생제의 남용이 왜 잘못 돤 것인지
알아보고, 아울러 치료의 능력이 있는 말씀의 남용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항생제는 병균을 죽임으로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지만, 잘못
사용될 경우 병균의 저항력을 길러주어 나중에는 치료가 가능한 병도 치료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양쪽 날이 선 검과 같이 예리하게 우리의 심령을 쪼개고 치료하는 말씀이라도 적용이 잘못될 때 오히려 우리의 상처만 깊게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항생제란 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을 몸 안에서 퇴치하는 약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 미생물들은 바이러스, 박테리아, 버섯종류의 미생물, 혹은 기생충 등으로 그 종류와 특성이 매우 다양하다. 그 중 박테리아만을 보아도 그 종류가 수없이 많을 뿐 아니라, 돌연변이를
일으킨 박테리아, 저항력을 가진 박테리아 등, 신종 박테리아의
계속적인 출현으로 그 종류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 게다가 버섯, 기생충
종류의 미생물까지 더하면, 그들을 퇴치하기 위한 항생제의 다양함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족하리라 생각된다. 더욱이 새로운 종류의 항생제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으니, 짧은 지면에
항생제 하나 하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항생제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을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병균에 감염되어 아플 때, 그
병원(病原)을 알고 치료하면 그만큼
치료 효과도 정확해 지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최소화 할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바이러스 감염, 즉 가장 흔한 감기, 몸살 등은
항생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치료가 된다. 이 때 노파심에서, 혹은 그냥 습관적으로 항생제를 복용하게 되면, 다른 종류의 병균에
대한 저항력만 체내에 생겨 막상 병균에 감염되었을 때 곤란을 겪게 된다.
이 항생제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바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미생물의 기능을 상실하게 하는 항생제의 역할이 체내를 구성하는 정상 세포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알레르기뿐 아니라, 소화기 벽의 세포들의 기능을 저하시켜
나타나는 구역질, 구토증, 그 밖에 혈관 내의 단백질의 활동을
방해하기도 한다. 또한 신경을 자극하여 두통, 어지러움 등을
비롯하여 시력 장애를 가져올 수 있는 항생제도 있고, 그 외 간, 신장, 골수의 기능을 저하시키거나, 임신 중에 태아를 기형으로 만드는 약물도
있으므로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항생제를 함부로 복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박테리아에게 저항을 키워 준다는
사실이다. ‘박테리아의 저항’이란 박테리아가 항생제의 특성을 이미 파악하여 그 항생제에 대한 무기를
가지게 됨으로 인하여, 항생제의 그 박테리아에 대한 효력이 상실되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결핵균과 같이 저항 능력이 유난히 강한 박테리아는, 약을 꾸준히
의사의 지시대로 복용하지 않을 경우, 차후 치료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다. 쉬운 예로, 이미 <다양한
저항력(bacilos multirresistentes)을 소유한 결핵균>, 또 얼마 전에 한국에 나타났던 <살 파먹는 죽음의 박테리아> 등의 경우는 항생제 저항으로 인하여 생긴 “감염은 곧 죽음”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수립한 좋은 예이다.
사실, 별로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는
많은 종류의 박테리아들이 저항력을 소유함에 따라 죽음의 박테리아로 변하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무분별한
항생제 남용의 결과이다. 따라서 일단은 의사가 복용하라고 한 날짜를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병이 조금 호전되었다고 해서 복용을 중단하고, 후에
악화되는 것 같아서 다시 같은 약을 복용하는 등의 행위는 효과도 보지 못하면서 부작용만 일으키고, 박테리아에게
저항력을 키우는 기회만 제공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못하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말씀이 치료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실 굉장한 치료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씀을 아무데다가 적용하다 보면, 듣는 사람에게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말씀으로 상처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감을 잃어버리게 되고,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될 수도 있음으로 주의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 4:12)
또한 많은 경우 말씀의 올바르지
못한 적용은 ‘위로와 치료’가 아닌 ‘정죄’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말씀을 받지 못하도록 저항력을 만들 수 있음으로 항생제를 올바로 복용하는 것처럼 말씀도 올바로 알고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5-17)
어떤 사람은 가끔 토정 비결이나 별점을 읽는 식으로 성경책을 열어
처음 걸린 말씀이 무슨 예언이나 되는 듯 이상하게 말씀을 ‘사용’하기도 한다. 때마침 성경을 열었더니
가롯 유다가 목을 매달아 죽었다는 말이 나온 것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생각하고 자살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설교의 예화이다. 또한 마침 좋은 말씀이 걸리면 안도의 숨을 내쉬고 어쩌다 책망의 말씀이라도 걸리면 왠지 떫은 기분을 감출 수
없는 것은 오랜 역사를 걸쳐 무속 신앙이 자리해 온 한민족 방식의 기독교 습관이기도 하다. 기복주의식나
신비주의로 말씀을 복용할 것이 아니라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그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방법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항생제의 복용과 더불어, 올바른
말씀의 복용을 통하여 충고와 위로를 받고 말씀이 날이 선 검처럼 살아서 치료의 능력을 행하게 하며, 좋지
못한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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