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어른의 지혜를 잘
활용하면 의외로 뜻밖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알고 보면 오래된 속담들 중에 깊은 생활의 지혜가 숨어
있는 경우도 빈번하다. 더우기 사회 구조의 변화와 그에 따른 여성의 사회 진출이 거의 필요 불가결해
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 번 집고 넘어가야 할 옛 어른의 지혜가 있다. 바로 <우유보다 모유를 먹은 아기가 건강하다>는 이야기이다.
대다수의 엄마들이 모유를
주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시간에 쫒겨서, 혹은 아기를
더욱 건강하게 자라게 하려면 비싸더라도 광고에서 본 좋은 메이커의 우유를 먹여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심지어는
자신의 몸매 관리를 위하여 아기에게 모유 먹이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비일 비재하다. 그로 인하여 대부분의
현대 아기들은 평균 1 개월 정도 모유를 먹으며, 2-3 개월
이상 수유하는 아기는 거의 없다는 통계가 나와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영양가가 골고루 배합된
우유보다도 모유가 더 좋은 이유를 몇가지 생각해보자.
첫째, 모유는 항상 아기가 먹기 가장 적합하게 준비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깨끗이
용기를 소독할 필요도 없고, 우유를 데워야 할 필요도 없다. 바꾸어
말하면 아기가 자칫 깨끗이 소독되지 않은 용기로 인하여 병균에 감염될 확률이 줄어들고, 차거나 뜨겁지
않게 알맞고 일정한 온도의 우유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는 매우
중요한 이점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엄마와 아기 사이에 유대 관계를 강화시켜 준다는 사실이다. 모유를
먹고 자란 아이들이 우유를 먹은 아이들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이유는, 태내에서만 듣던 엄마의 심장
박동, 숨소리, 목소리 등을 비롯한 엄마의 존재를 모유를
먹는 동안 편안히 느낄 수 있어, 배내 생활과 이 세상 사이의 변화에 더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이 있다. 실제로
아동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기본 인격은 만 3세
이전에 형성된다. 따라서 세 살이 되기 전에 정서를 안정되게 키울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유를 먹이면서 엄마와 아기가 아름다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로 가장 의학적인
이유는 소에서 얻어진 우유, 또는 그 외 병균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알레르기, 질병등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우기 모유는 여러 종류의 병균에
대항할 수 있는 면역글로불린을 함유하고 있다. 원래 신생아의 경우 약
6 개월 동안은 스스로 항체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고, 태내에서 받은 항체와
모유를 통해 받은 면역글로불린으로 몸을 보호하도록 되어있다. 특히 락토페린이라는 단백질은 E. coli (에스케리치아 콜리) 라는 박테리아의 성장을 정지시키고, 철분을 저장하는 것으로, 모유의 함유율이 우유보다 10배 이상 높은 데다 질도 뛰어나다.
그 밖에도 모유는 뇌의
성장에 필요한 유당을 비롯, 락토알부민, 그리고 아직 그
기능을 밝히지 못한 여러 종류의 영양분을 가지고 있어 아기의 필요에 가장 적합한 식량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초유는 면역성과 아기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단백질을 매우 많이 함유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이와 같은
이유로 6-12 개월 정도 모유를 줄 것이 적극 권장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모유를 먹이는 동안에는 프롤락틴이라는 호르몬이 생성되어 자연 피임이 되는 등 호르몬 분비가 적절하게 이루어 지도록 되어있어
엄마의 건강관리에도 유익하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설계하신 것이 다 그 이유가 있어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그 능력의 신묘 막측함을 측랑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딤전 4:4)>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아기를 낳고 모유가 나오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더 잘해보겠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오묘함을 따를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생명 과학의 발달로
락토페린이 함유된 우유를 생산해 내는 소가 개발되기도 하고, 과학적으로 계산된 질 좋은 우유가 많이
출시되고 있다. 아기는 모유가 아니라 우유를 먹고도 잘 자란다. 그러나
모유가 우유보다 바람직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한 생명을 구원하고
건강하게 잘 살도록 하는 데는 시작부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원리는 영적으로 자녀를 낳았을 때도
적용할 수 있다. 전도를 하고 그냥 교회에 데려다 놓은 것이 전도의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유를 먹고도 아기가 잘 자라는 것처럼 교회안에서 좋은 목사님과 직분자들의 도움으로 잘 커나갈 수도 있지만, 전도를 한 사람이 자녀를 낳은 심정으로 관심을 가져주고 기도로 도와준다면 새신자의 믿음이 더없이 성장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잘못된 교리나 신앙 철학을 듣고 실족하지 않도록 면역성을 길러주고,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며, 무엇보다 기도로서 그의 영혼이 믿음 안에서
올바로 성장하도록 도와 주면 하나님 앞에 더욱 아름다울것이다.
스스로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보살펴 주는 엄마의 마음을 가지면 새신자가 교회에서 상처받고 떠나가는 일들이 훨씬 줄어들지않을까.
후진국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고 많이 죽인다. 모유를 줄 힘도 없는 그들은 새로 태어난 아기를 환영할 힘도 없다, 언제 죽을 지 모르니까. 현대 교회가 그렇다. 많이 전도하고, 관리하지 못함으로 새신자들이 영양 실조와 썰렁한
교회의 냉담한 반응에 죽는다, 상처받는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태어난 아기를 최대한으로 살린다. 모유를 주고, 사랑을 주고, 철저하게 투자한다. 교회의 배워야 할 점이다.
해산의 고통이 아무리
커도, 아기가 죽으면 그 고통도 헛되다. 난산이다. 한 영혼도 실족치 않도록 두려움과 떨림으로 새로온 형제 자매를 받아들여 주는 것이, 성장 정지를 한탄하는 현대 교회에 해산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안타까운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힘들여 전도하고 등록시키고, 잃어버라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기를 많이 낳고 많이 죽이는 후진국 형태가 아니라, 적게
낳더라도 다 살리고 잘 키우는 선진국형 교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형편이 어렵고, 힘들어도 아기를 위해 시간을 내고, 사랑을 주는 엄마의 마음으로......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베드로 전서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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