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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3일 금요일

실용 의학편 5. 귀와 이염 -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특별히 귀와 원수 진 일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귀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을 한다. 남의 말을 너무 잘 듣는 사람을 귀가 여리다고 하고, 생일이 되면 귀 빠진 날이라고 한다. 선생님이 제자를 벌 주려고 끌고 갈 때 귀를 잡고 가는 모습은 학창 시절의 그리운 풍경으로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다.

귀는 해부학적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 구박의 대상인 가장 바깥쪽에 있는 외이(), 가운데 부분인 중이, 그리고 감각 신경부분에 해당하는 내이가 그것이다. 이 귀에 염증이 생긴 것을 “이염”이라고 하며, 크게 외이염과 중이염으로 분류한다. 외이염과 중이염은 각각 급성 이염과 만성 이염으로 나눌 수 있으며, 한편 원인에 따라서 박테리아, 곰팡이균, 바이러스 등으로 인한 감염 염증과 그렇지 않은 비감염 염증으로 구분한다.

먼저 외이염을 살펴보면 주로 습하고 더운 기간에 일어나고, 통증과 분비물을 수반하며, 대부분은 약물로 염증 부분을 국소 치료하면 된다. 면봉을 사용하거나 수영을 하는 사람, 알레르기 체질이 있는 사람은 외이염에 더 잘 걸릴 수 있고, 중이염으로 인해 고막이 파괴 되고 분비물이 흘러 나오는 경우에도 외이염이 생길 수 있다. 당뇨병을 비롯하여 면역성이 약하여진 환자의 경우에는 곰팡이 균 등 특이 병균으로 인한 외이염이 걸릴 수도 있음으로 전문의의 확진을 받고 치료를 하는 것이 좋으며 일반적으로는 약물로 적절한 원인 치료를 할 수 있다.

중이염은 중이강 내에 일어나는 모든 염증성 변화를 총칭하는 것으로 외이염보다 증세와 원인이 더 다양하다. 비감염 염증의 대표적인 예로 기압 중이염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비행이나 수중 다이빙으로 인한 고도 변화에 기인한 것으로 통증과 난청, 자가 강청 (귀내에서 소리가 들림) 등의 증상을 수반하며, 간단한 약물로 예방과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더 흔한 중이염은 감염 염증인 화농성 중이염으로, 주로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나타난다. 구조적으로 중이(귀의 고막 안쪽)의 모양이 기형이거나, 면역성이 약화된 경우, 당뇨병 환자 등은 중이염에 감염될 확률이 더 높다. 특히 소아의 경우에는 그 발병 횟수가 더욱 빈번하며, 증상도 더 심하다. 비염, 후두염, 편도선염, 부비동염 (축농증sinusitis), 심지어는 골수염 등은 중이염을 일으킬 수 있는 주 원인이 된다. 중이염은 일반적으로 완전하게 치료가 되지만, 때로는 뼈나 뇌 부분으로 염증이 옳겨갈 수 있음으로, 적절한 때에 올바르게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이염의 증상을 살펴보면 발열, 이통, 난청, 분비물 등을 열거할 수 있으며, 소아의 경우 식욕 부진, 구토 등의 증상을 수반할 수도 있다. 열은 갑자기 오르는데, 어른의 경우보다 소아의 경우 더 심하게 나타난다. 이통은 매우 심한 통증으로서 규칙적으로 반복되며, 고막이 터지면 사라진다. 난청은 귀가 잘 안 들리게 되는 것을 말하며, 때로는 자가 강청을 동반할 수도 있다. 분비물은 고막이 터진 경우에만 나타나는 증상이다. 급성중이염이나 만성중이염의 악화로 골성 내이를 압박, 파괴하는 경우에 그 부분에서 세균이 내부로 침입, 염증을 일으켜 드물게는 뇌막염이 청신경이나 전정도수관을 통해 내이감염을 일으키는 예도 있다. 중이염에서 내이의 극히 일부가 서서히 침해될 경우에는 아무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어느 정도 진행되면 현기증 ·귀울음 ·구토증 ·난청 등의 증세가 생기고, 심하면 완전히 귀머거리가 될 수도 있다. 더 증세가 악화되면 뇌막염이나 뇌농양을 일으키기도 한다.

중이염의 치료는 통증을 없이하고, 염증을 퇴치하는 데 중점을 두며, 따라서 항생제와 진통제를 복용한다. 그러나 병이 많이 진전 된 경우 필요에 따라서 수술을 요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정말 사람 볼 줄 아는 사람은 귀를 통해 관상을 보기보다는 그 귀의 사용 방법에 따라 그 사람의 지혜로움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귀를 잘 이용해서 충고와 조언을 적절히 잘 들으면 지혜로운 자요, 들을 말을 듣지 아니하면 미련한자라고 하나님은 수 차례에 걸쳐서 말씀하신다.

만일 우리의 영도 귀를 가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물론 “그렇다”이다. 우리의 귀는 하나님의 말씀, 책망, 아비의 훈계, 하나님의 명령, 교훈 등을 듣도록 되어있다. 새 신자의 경우는 기압 중이염에 걸린 사람처럼 처음 듣는 복음이 생소하여 통증을 수반하고 염증이 생길 수 있으나 곧 익숙해질 수 있다. 갑자기 구원을 받고 세상과는 다른 고도의 수준의 말씀을 들으니 좋기도 하고,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왠지 늘 듣던 말씀인데도 껄끄럽고, 귀에 거슬린다고 생각이 되면 이염, 특히 중이염이 아닌가 의심해보아야 한다. 증상은 위에 열거한 바와 같이 열이 나서 흥분이 되기도 하고, 아프며, 들어야 할 말이 잘 들리지 않고, 때로는 더러운 생각이 밖으로 흘러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소아의 경우처럼, 영적 소아인 새 신자는 상처받기 시작하면 그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으며, 따라서 더욱 주의하여 기도로 도와주어야 한다.

이러한 염증은 속히 치료하고 오래 두지 않아야 한다. 성경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는 자에 대해서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는 패역한 족속...( 12:2)”이며,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7:11),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게 된다(딤후 4:4)”고 말하고 있다.

더욱이 하나님은 우리에게만 들으라고 강요하시지 않고, 우리처럼 친히 이 귀를 가지시기로 결정하셨다. 그래서 하나님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부르짖으라, 응답하겠고...( 33:3). 듣고 싶으니 말 좀 하라고 늘 우리에게 귀를 열어놓고 계신다. 하나님도 듣기를 즐겨하시고 좋아하시니, 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임에 확실하다. 우리는 이 좋은 귀가 허탄한 유혹에 빠져 버리는  “귀가 여린 사람”이 되지 말고, 귀를 지혜롭게 다스려 오직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는 (2:2)> 사람들이 다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13년 12월 12일 목요일

기초 의학편 14.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현미경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한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성경을 보면 구약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그 뜻을 전해주시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셨고, 그 분이 하늘로 올라가신 후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사실 하나님도 알지 못하면서 막연히 하나님의 뜻을 알 수는 없다.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물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다. 그 중 가장 정확한 방법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 3:15) 나는 의대에서 조직학을 배우면서 현미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현미경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세한 세포들과 조직들을 렌즈를 이용하여 확대시켜 보면서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기구이다. 나는 이 현미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조직학을 사랑하게 되었다.

현미경은 전자 현미경, 편광 현미경 등을 비롯하여 그 종류도 다양하고 그 기능도 다양하다. 먼저 간단하게 현미경의 조작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물론 여기에 서술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간단하지는 않다.) 먼저 조직을 얇게 썰어 작은 유리판에 올려놓은 다음 염색을 해서 더 조그만 유리 덮게로 덮어 일명 프레파라아트를 만든다. 이 작은 프레파라아트가 내가 현미경으로 보아야 하는 목적물, 즉 하나님의 뜻으로 비유될 수 있었다. 나는 그 조직을 보아야 함을 알 수 있었지만 그 조직이 어떤 조직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치 하나님 뜻을 알고 싶었지만 도대체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 수 없었던 것과 같았다.

이 조직을 보려면 먼저 현미경을 전구를 향해 조명을 해야 한다. 현미경에는 두개의 렌즈가 있는데 조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현미경이라도 나에게 조직을 보여줄 수 없다. 렌즈와 전구 사이에 작은 거울이 있는데 그 거울을 조절하여 전구의 불빛이 렌즈를 통하여 나의 눈에까지 전달이 된다. 그 거울은 마치 예수님처럼, 전구되신 하나님과 나 사이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딤전 2:5-6) 나는 현미경이라는 환경을 통하여 조직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했고, 그를 위해서 먼저 전구되신 하나님을 향하여 그를 바라보아야 했으며, 거울 되신 예수님의 중재가 없인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조명이 된 후에는 먼저 조동 나사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 초점을 맞춘다고는 하나 그 조직을 다 알 수는 없다. 커다란 비젼을 보고 이 조직은 어떤 조직이다라고 알 수 있을 뿐이다. 마치 이제 겨우 하나님의 뜻을 짐작하기 시작할 때와 같다. 조동 나사로 커다란 초점이 맞춰진 후에는 내가 보기를 원하는 부분을 가운데에 놓고 미동 나사로 미세한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천천히 미동 나사를 돌리면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조직을 바라보는 기분은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다. 뿌옇고 흐릿하던 형상이 깨끗한 화면으로 비추어 질 때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이것이 무슨 세포로구나!’ 하며 그 동안 짐작해 왔던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이 뿌옇게 보여 괴롭고 힘들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조동 나사를 거쳐 미동 나사까지 완벽하게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만 비로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저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17-19) 조동 나사로 볼 수 있는 것이 다르고, 미동 나사로 볼 수 있는 것이 다르다. 더 나아가서 전자 현미경은 더 자세하고 미세한 세포 내부까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사를 돌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제는 거기까지, 지금은 여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찾아 살아왔다. 어느 순간 전자 현미경으로 보는 것보다도 더 확실하게 당신의 뜻을 알게 하실 줄 믿는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기를( 1:9-10) 간절히 소원한다.



기초 의학편 13. 항생제 / 말씀의 올바를 복용


페니실린이나 가나마이신, 아목시실린 등 일부 항생제의 이름은 우리들의 귀에 퍽이나 익숙하다. 감기에 걸리거나 통증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나름대로 항생제를 구입하여 복용하는 것은 많은 한국인들의 습관이기도 하다. 항생제의 남용이 왜 잘못 돤 것인지 알아보고, 아울러 치료의 능력이 있는 말씀의 남용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항생제는 병균을 죽임으로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지만, 잘못 사용될 경우 병균의 저항력을 길러주어 나중에는 치료가 가능한 병도 치료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양쪽 날이 선 검과 같이 예리하게 우리의 심령을 쪼개고 치료하는 말씀이라도 적용이 잘못될 때 오히려 우리의 상처만 깊게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항생제란 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을 몸 안에서 퇴치하는 약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 미생물들은 바이러스, 박테리아, 버섯종류의 미생물, 혹은 기생충 등으로 그 종류와 특성이 매우 다양하다. 그 중 박테리아만을 보아도 그 종류가 수없이 많을 뿐 아니라, 돌연변이를 일으킨 박테리아, 저항력을 가진 박테리아 등, 신종 박테리아의 계속적인 출현으로 그 종류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 게다가 버섯, 기생충 종류의 미생물까지 더하면, 그들을 퇴치하기 위한 항생제의 다양함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족하리라 생각된다. 더욱이 새로운 종류의 항생제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으니, 짧은 지면에 항생제 하나 하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항생제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을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병균에 감염되어 아플 때, 그 병원(病原)을 알고 치료하면 그만큼 치료 효과도 정확해 지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최소화 할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바이러스 감염, 즉 가장 흔한 감기, 몸살 등은 항생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치료가 된다. 이 때 노파심에서, 혹은 그냥 습관적으로 항생제를 복용하게 되면, 다른 종류의 병균에 대한 저항력만 체내에 생겨 막상 병균에 감염되었을 때 곤란을 겪게 된다.

이 항생제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바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미생물의 기능을 상실하게 하는 항생제의 역할이 체내를 구성하는 정상 세포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알레르기뿐 아니라, 소화기 벽의 세포들의 기능을 저하시켜 나타나는 구역질, 구토증, 그 밖에 혈관 내의 단백질의 활동을 방해하기도 한다. 또한 신경을 자극하여 두통, 어지러움 등을 비롯하여 시력 장애를 가져올 수 있는 항생제도 있고, 그 외 간, 신장, 골수의 기능을 저하시키거나, 임신 중에 태아를 기형으로 만드는 약물도 있으므로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항생제를 함부로 복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박테리아에게 저항을 키워 준다는 사실이다. ‘박테리아의 저항’이란 박테리아가 항생제의 특성을 이미 파악하여 그 항생제에 대한 무기를 가지게 됨으로 인하여, 항생제의 그 박테리아에 대한 효력이 상실되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결핵균과 같이 저항 능력이 유난히 강한 박테리아는, 약을 꾸준히 의사의 지시대로 복용하지 않을 경우, 차후 치료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다. 쉬운 예로, 이미 <다양한 저항력(bacilos multirresistentes)을 소유한 결핵균>, 또 얼마 전에 한국에 나타났던 <살 파먹는 죽음의 박테리아> 등의 경우는 항생제 저항으로 인하여 생긴 “감염은 곧 죽음”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수립한 좋은 예이다.

사실, 별로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는 많은 종류의 박테리아들이 저항력을 소유함에 따라 죽음의 박테리아로 변하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무분별한 항생제 남용의 결과이다. 따라서 일단은 의사가 복용하라고 한 날짜를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병이 조금 호전되었다고 해서 복용을 중단하고, 후에 악화되는 것 같아서 다시 같은 약을 복용하는 등의 행위는 효과도 보지 못하면서 부작용만 일으키고, 박테리아에게 저항력을 키우는 기회만 제공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못하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말씀이 치료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실 굉장한 치료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씀을 아무데다가 적용하다 보면, 듣는 사람에게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말씀으로 상처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감을 잃어버리게 되고,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될 수도 있음으로 주의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 4:12)

또한 많은 경우 말씀의 올바르지 못한 적용은 ‘위로와 치료’가 아닌 ‘정죄’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말씀을 받지 못하도록 저항력을 만들 수 있음으로 항생제를 올바로 복용하는 것처럼 말씀도 올바로 알고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5-17)

어떤 사람은 가끔 토정 비결이나 별점을 읽는 식으로 성경책을 열어 처음 걸린 말씀이 무슨 예언이나 되는 듯 이상하게 말씀을 ‘사용’하기도 한다. 때마침 성경을 열었더니 가롯 유다가 목을 매달아 죽었다는 말이 나온 것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생각하고 자살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설교의 예화이다. 또한 마침 좋은 말씀이 걸리면 안도의 숨을 내쉬고 어쩌다 책망의 말씀이라도 걸리면 왠지 떫은 기분을 감출 수 없는 것은 오랜 역사를 걸쳐 무속 신앙이 자리해 온 한민족 방식의 기독교 습관이기도 하다. 기복주의식나 신비주의로 말씀을 복용할 것이 아니라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그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방법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항생제의 복용과 더불어, 올바른 말씀의 복용을 통하여 충고와 위로를 받고 말씀이 날이 선 검처럼 살아서 치료의 능력을 행하게 하며, 좋지 못한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1-:105)